안치환 - 담쟁이
내겐 허무의 벽으로만 보이는 것이
그 여자에겐
세상으로 통하는 창문인지도 몰라
내겐 무모한 집착으로만 보이는 것이
그 여자에겐
황홀하게 취하는 광기인지도 몰라
누구도 뿌리 내리지 않으려 하는 곳에
뼈가 닳아지도록 뿌리 내리는 저 여자
오 잿빛 담장에
녹색의 창문들을 무수히 달고 있네
질긴 슬픔의 동아줄을 엮으며
칸나꽃보다 더 더 높이 하늘로 오르네
마침내 벽 하나를 몸 속에 삼키고
온몸으로 벽을 갉아먹고 있네
아 - 워 - 지독한 사랑이네
아 - 워 - 지독한 사랑이네
지독한 사랑이네
이제 담장이는 그만 푸르러도 좋으니
짙은 회색 하늘이나마 새파랗게 높았으면.